2009년 07월 17일
과학 혐오증의 유형을 관찰하다.
살다보니 가끔 과학을 혐오하는 태도를 여러 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종교단체에서, 어떤 개인들의 홈페이지나 책의 글에서도 발견하였다. 과학센터 앞을 지나치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돋을 것 같다는 과학 혐오증. 첨단 과학시대에 살면서도 과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과학을 싫어하고, 거부하기까지 하는 것일까? 그동안 목격한 과학 혐오증의 유형을 대강 정리해보았다.
1. 수학 공포증 :
수학은 육체미 운동과 비슷하다. 근육을 단련하듯이 힘들여서 매일매일 꾸준하고 착실히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해야만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계단식 과목이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훈련이 부족해서 수학 혐오증, 수학 공포증에 빠지는 이들이 생긴다. 수학을 못하게 되면 수학을 사용할 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이해를 못하게 된다. 덩달아 과학 혐오증, 과학 공포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물리학에 대한 몰이해가 심화된다. 그 결과 더욱 악화되는 증상이 다음의 증상일 것이다.
2. 양자역학 & 상대성이론 거부증 :
가끔 뚜렷한 증거나 근거도 없이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에 대해 거부감, 혐오감을 드러내고 "난 믿을 수 없어!"라는 선언을 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란 것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현상을 기술하니까 믿어지지 않아서 거부한다라든가, 자신의 결정론적인 철학에 맞지 않으니까 거부하겠다는 식으로,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이다.
실제로 예전에 어떤 사이트 게시판에서 상대성이론을 믿을 수 없는 엉터리라며 부정하는 분을 본 적이 있다. 무슨 증거나 이론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어떤 조건에서 빛이 휘어서 진행한다거나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신기한 이야기들이 '믿어지지 않아서'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네티즌들이 '그건 공부하시면 알게 됩니다.'라고 말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상대성이론이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진 이유는 모순 없이 뚜렷한 논리체계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여러 방식으로 검증된 객관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증거도 없이 무조건 믿으라는 종교와는 전혀 다른, 객관적 진리 추구의 학문 활동이다. 그런데, 그 분은 마치 상대성이론을 종교처럼 취급한 것이다. 믿기 싫으니까 안 믿겠단다. 이건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증명되었으냐 말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양자역학 혐오증도 가끔 발견되는 현상이다. 양자역학의 연구결과가 "세상만사 처음부터 끝까지 다 결정되어있지, 사람 팔자 못 바꾼다구!"라는 결정론에 어긋난다는 게 혐오증의 이유다. 양자역학 혐오증은 인터넷에서도 발견한 적이 있고 책에서도 보았다.
양자역학 혐오증으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일찌기 상대성이론의 발견자로 유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결정론적 세계관, 철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양자역학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살아생전에는 그나마 양자역학에 대해 논란을 벌일 만한 구석이라도 좀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이후의 추가적 연구로 양자역학은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이론체계로서, 결정적 증거들이 확보된 상태다. 아인슈타인 살아생전에 이미 아인슈타인 자신도 후배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의 깔끔한 이론적 연구성과를 접하고 "내가 틀릴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죽은 후 이루어진 추가 연구로 양자역학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직도 양자역학 거부증이 가끔 보인다.
이는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객관적 증거를 검토하고,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착실히 공부하면 충분히 배워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데도, 그냥 '내 취향에 안 맞으니까', '내 마음에 안 드니까'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사가 다 자기 마음대로만 되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하지만,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해 인간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고 요구하는 활동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결론을 내리며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더 많은 진리를 찾아내는 활동이다. 과학의 본성과 그 구체적 연구성과에 대한 무지나 오해가 이런 태도를 낳는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거부했으니까 양자역학은 틀렸고 아인슈타인이 옳다고 주장하는 논리도 본 적이 있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종교의 교주가 아니다. 또한 아무리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틀릴 때가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 자신이 발견한 상대성이론의 논리적 귀결인 우주 팽창설을 부정하였다. 억지로 우주상수란 것을 집어넣어서 우주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는 정상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우주 팽창의 증거가 발견되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였다. 과학의 최종 결정권자는 특정 권위자가 아니라 '증거'와 '체계적인 논리'이다.
과학은 인간 집단의 지성을 총동원해서 객관적 증거를 수집해서 검증하고 이론체계를 다듬어가는 진리 추구 활동이다. 어떤 권위자 개인이 하는 말이 절대 진리로 취급되는 종교나 이념의 세계가 아니다. 과학계에서 아인슈타인이 종교 지도자 취급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무조건적인 믿음, 취향의 강요는 과학이 아니라 그냥 신앙 활동에 불과하다. 각자 자기 취향대로 믿거나 말거나 할 거면 과학이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과학계에서 어떤 과학자가 존경받는다면 그건 그가 주장한 학설과 연구가 맞았다는 객관적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 과학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신의 계시를 받고 신도를 많이 모은 종교 지도자여서가 아니다.
3. 진화론 거부증 :
인간 중심주의 종교 교리에 푹 빠진 일부 종교인들은 지구 생태계의 역사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화 현상과 그에 대한 연구성과를 거부하고는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는 미국에서 유달리 이 현상이 심하다고 한다. 미국의 극심한 영향을 받고 현대 문화가 형성된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이 증세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어느 때는 과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에서조차 사이비 과학인 창조설을 과학이라며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고 할 정도이다.
창조설이 논리적 정합성이나 객관적 증거를 무시하고 기성 종교의 교리를 우겨대고 강요하는 '종교적 믿음'에 불과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특유의 "인간은 잘 났다.", "인간은 신의 가호를 받는 선민, 귀족이다."라는 욕심, 자만심, 애정 결핍증은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백인 사회를 한 때 휩쓸었던 백인 우월주의, 인종 차별주의가 우리 같은 유색인종이 볼 때 건전하지 않은 태도인 것처럼, 인간 우월주의 역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빠져있는 선입견이고 비과학적 편견에 불과하다.
4. 심리학 혐오증 :
역시 종교계에서 가끔 발견되는 증상이 심리학 혐오증이다. 인간의 마음은 신비한 것이고, 영혼의 신비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는데, 어찌 인간들 따위가 마음의 신비를 밝혀내려 드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일반 대중의 무지와 혼란은 21세기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문적으로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SF(과학소설) 카페에서조차, '영혼'이라는 가상 실체를 과학적으로 실존하는 것처럼 가정하고 주장을 하는 회원이 있을 정도이다. "스타트렉" 같은 공상과학 드라마에서 인간을 공간이동시키는 기계가 나오는데, 영혼을 전송하려면 어쩌구 저쩌구...... 과학기술 이야기를 하면서 영혼론을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말도 안되는 태도이다. 하지만 기성 사회에서 입버릇처럼 영혼이니 귀신이니 하는 단어들을 이야기하고, 공포영화나 흥미 위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형상화하다보니, 마치 실존이 입증된 것처럼 혼동하고는 한다. 관습적이거나 종교적인 주관적 믿음과, 객관적이고 입증된 증거는 구별할 줄 알아야 '과학'에 대한 정확한 주장이 가능해진다.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정신현상, 인체 시스템에 대해 있는 그대로 공부하고 관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중인격 현상을 증거도 없이 귀신의 짓으로 단정짓고, 자기 일이나 집안일이 안 풀리면 조상의 혼령이 방해해서 그렇다는 주장이나 하고, 명당 자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현실 상황을 분석하지 않는 태도는, 인간적일지는 몰라도, 결코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5. 과학 통째 혐오증 :
마지막으로, '과학 그 자체'를 혐오하는 증상이 있다. 과학적 탐구정신에 대한 오해와 무지, 종교적 교리에 대한 집착으로 과학 그 자체를 부정해버린다.
과학은 정확한 게 아니고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하니까 과학을 믿지 말라는 식으로 과학에 대한 인신공격(?)을 시도한다. 이런 주장을 최근에 대형서점에 진열된 과학책을 가장한 종교서적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인류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진화를 부정하려니, 이제는 '과학 그 자체'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핸드폰, 자동차, 고속열차, 비행기, 텔레비전 등의 현대과학기술의 혜택은 다 누리면서도 "과학은 부정확하고 증명하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믿지 마라."는 어떤 종교인의 주장. 이런 책이 과학서적 코너에 진열되어있으니 씁쓸한 실소가 나온다. 과학이 부정확하고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데 자신은 무얼 믿고 비행기를 타고 냉장고를 사용한다는 말인가? 지구가 둥글고 내일 아침에도 태양이 뜨리란 건 어떻게 알며, 자기 자동차 열쇠를 돌리면 시동이 걸릴 거라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 것일까?
과학은 그나마 인류사회가 벌이는 활동들 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편이고, 끝없이 진리에 접근하며 정확성을 향상시키는 활동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종교 교리나 이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또한 순수한 진리 추구에 방해가 되어 그 교리에 관련된 객관적인 학문적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게 막는다. 종교적 이념 때문에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으라며 대중에게 강요하다가 결국 과학적 증거에 밀려나고 만 천동설 교리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실에 맞지 않는 종교 교리나 이데올로기는 인류 사회에서 세월이 지날수록 자꾸 도태되어왔다. 인류 대중은 지혜를 가진 종이므로 결국은 자꾸만 반복되는 현실에 눈을 뜰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의 어느 유사종교 교주는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 속에도 귀신이 있어서 우리를 배후조종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공포영화 소재로는 환영할 만한 발상이지만, 이런 주장을 객관적 증거도 없이 진지하게 하고, 또 그걸 믿는 사람들이 나오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과학기술과 오컬트의 결합. 무지와 욕망, 맹신이 결합되면 어떠한 주장도 가능해진다.
나는 현실 세계에서 점 치고 정해진 운명을 묻는 사람, 온갖 종교 믿으며 소원 비는 사람, 명당 찾고 잘 되려는 사람, 어떤 물건을 사서 쓰니까 그 때부터 좋은 애인도 만나고 자기 생활이 잘 풀린다는 사람, 징크스 따지는 운동선수들, 쥐띠니 소띠니 용띠니 뱀띠니 띠를 따지고 혈액형을 따지는 사람 등 숱한 사람들을 보고 겪어왔다. 이 세상에 비과학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은 숱하게 많다.(그 중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경험해보았다.) 그러나,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만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운 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고, 마음이 약한 존재라서 그렇다. 또한 지식도 부족하기 일쑤다. 그래서 뭔가에 의지하려 들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더라도 믿으려 든다.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이 심한 반면, 과학정신과 과학지식이 부족한 게 문제다. 무지와 오해와 맹신, 과욕과 공포심과 탐욕으로 전쟁무기를 함부로 휘두르거나 환경오염을 일으키기는 쉽다. 하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며 침착하고 신중한 과학적 탐구정신을 발휘하려면? 공부하고 연구하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건전한 윤리정신의 추구조차, 객관적인 과학적 탐구정신이 필요하다. 과학이 지나쳐서 문제가 아니라, 과학이 부족해서 곤란한 세상이다. 비싼 승용차를 타고 다니거나 핵폭탄을 만들어 쏘아댄다고 그게 선진화된 과학국가는 아닐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 속에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 '정신'이 살아있어야 참된 과학국가일 것이다.
1. 수학 공포증 :
수학은 육체미 운동과 비슷하다. 근육을 단련하듯이 힘들여서 매일매일 꾸준하고 착실히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해야만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계단식 과목이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훈련이 부족해서 수학 혐오증, 수학 공포증에 빠지는 이들이 생긴다. 수학을 못하게 되면 수학을 사용할 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이해를 못하게 된다. 덩달아 과학 혐오증, 과학 공포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물리학에 대한 몰이해가 심화된다. 그 결과 더욱 악화되는 증상이 다음의 증상일 것이다.
2. 양자역학 & 상대성이론 거부증 :
가끔 뚜렷한 증거나 근거도 없이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에 대해 거부감, 혐오감을 드러내고 "난 믿을 수 없어!"라는 선언을 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란 것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현상을 기술하니까 믿어지지 않아서 거부한다라든가, 자신의 결정론적인 철학에 맞지 않으니까 거부하겠다는 식으로,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이다.
실제로 예전에 어떤 사이트 게시판에서 상대성이론을 믿을 수 없는 엉터리라며 부정하는 분을 본 적이 있다. 무슨 증거나 이론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어떤 조건에서 빛이 휘어서 진행한다거나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신기한 이야기들이 '믿어지지 않아서'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네티즌들이 '그건 공부하시면 알게 됩니다.'라고 말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상대성이론이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진 이유는 모순 없이 뚜렷한 논리체계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여러 방식으로 검증된 객관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증거도 없이 무조건 믿으라는 종교와는 전혀 다른, 객관적 진리 추구의 학문 활동이다. 그런데, 그 분은 마치 상대성이론을 종교처럼 취급한 것이다. 믿기 싫으니까 안 믿겠단다. 이건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증명되었으냐 말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양자역학 혐오증도 가끔 발견되는 현상이다. 양자역학의 연구결과가 "세상만사 처음부터 끝까지 다 결정되어있지, 사람 팔자 못 바꾼다구!"라는 결정론에 어긋난다는 게 혐오증의 이유다. 양자역학 혐오증은 인터넷에서도 발견한 적이 있고 책에서도 보았다.
양자역학 혐오증으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일찌기 상대성이론의 발견자로 유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결정론적 세계관, 철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양자역학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살아생전에는 그나마 양자역학에 대해 논란을 벌일 만한 구석이라도 좀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이후의 추가적 연구로 양자역학은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이론체계로서, 결정적 증거들이 확보된 상태다. 아인슈타인 살아생전에 이미 아인슈타인 자신도 후배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의 깔끔한 이론적 연구성과를 접하고 "내가 틀릴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죽은 후 이루어진 추가 연구로 양자역학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직도 양자역학 거부증이 가끔 보인다.
이는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객관적 증거를 검토하고,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착실히 공부하면 충분히 배워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데도, 그냥 '내 취향에 안 맞으니까', '내 마음에 안 드니까'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사가 다 자기 마음대로만 되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하지만,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해 인간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고 요구하는 활동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결론을 내리며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더 많은 진리를 찾아내는 활동이다. 과학의 본성과 그 구체적 연구성과에 대한 무지나 오해가 이런 태도를 낳는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거부했으니까 양자역학은 틀렸고 아인슈타인이 옳다고 주장하는 논리도 본 적이 있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종교의 교주가 아니다. 또한 아무리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틀릴 때가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 자신이 발견한 상대성이론의 논리적 귀결인 우주 팽창설을 부정하였다. 억지로 우주상수란 것을 집어넣어서 우주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는 정상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우주 팽창의 증거가 발견되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였다. 과학의 최종 결정권자는 특정 권위자가 아니라 '증거'와 '체계적인 논리'이다.
과학은 인간 집단의 지성을 총동원해서 객관적 증거를 수집해서 검증하고 이론체계를 다듬어가는 진리 추구 활동이다. 어떤 권위자 개인이 하는 말이 절대 진리로 취급되는 종교나 이념의 세계가 아니다. 과학계에서 아인슈타인이 종교 지도자 취급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무조건적인 믿음, 취향의 강요는 과학이 아니라 그냥 신앙 활동에 불과하다. 각자 자기 취향대로 믿거나 말거나 할 거면 과학이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과학계에서 어떤 과학자가 존경받는다면 그건 그가 주장한 학설과 연구가 맞았다는 객관적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 과학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신의 계시를 받고 신도를 많이 모은 종교 지도자여서가 아니다.
3. 진화론 거부증 :
인간 중심주의 종교 교리에 푹 빠진 일부 종교인들은 지구 생태계의 역사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화 현상과 그에 대한 연구성과를 거부하고는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는 미국에서 유달리 이 현상이 심하다고 한다. 미국의 극심한 영향을 받고 현대 문화가 형성된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이 증세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어느 때는 과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에서조차 사이비 과학인 창조설을 과학이라며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고 할 정도이다.
창조설이 논리적 정합성이나 객관적 증거를 무시하고 기성 종교의 교리를 우겨대고 강요하는 '종교적 믿음'에 불과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특유의 "인간은 잘 났다.", "인간은 신의 가호를 받는 선민, 귀족이다."라는 욕심, 자만심, 애정 결핍증은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백인 사회를 한 때 휩쓸었던 백인 우월주의, 인종 차별주의가 우리 같은 유색인종이 볼 때 건전하지 않은 태도인 것처럼, 인간 우월주의 역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빠져있는 선입견이고 비과학적 편견에 불과하다.
4. 심리학 혐오증 :
역시 종교계에서 가끔 발견되는 증상이 심리학 혐오증이다. 인간의 마음은 신비한 것이고, 영혼의 신비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는데, 어찌 인간들 따위가 마음의 신비를 밝혀내려 드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일반 대중의 무지와 혼란은 21세기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문적으로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SF(과학소설) 카페에서조차, '영혼'이라는 가상 실체를 과학적으로 실존하는 것처럼 가정하고 주장을 하는 회원이 있을 정도이다. "스타트렉" 같은 공상과학 드라마에서 인간을 공간이동시키는 기계가 나오는데, 영혼을 전송하려면 어쩌구 저쩌구...... 과학기술 이야기를 하면서 영혼론을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말도 안되는 태도이다. 하지만 기성 사회에서 입버릇처럼 영혼이니 귀신이니 하는 단어들을 이야기하고, 공포영화나 흥미 위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형상화하다보니, 마치 실존이 입증된 것처럼 혼동하고는 한다. 관습적이거나 종교적인 주관적 믿음과, 객관적이고 입증된 증거는 구별할 줄 알아야 '과학'에 대한 정확한 주장이 가능해진다.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정신현상, 인체 시스템에 대해 있는 그대로 공부하고 관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중인격 현상을 증거도 없이 귀신의 짓으로 단정짓고, 자기 일이나 집안일이 안 풀리면 조상의 혼령이 방해해서 그렇다는 주장이나 하고, 명당 자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현실 상황을 분석하지 않는 태도는, 인간적일지는 몰라도, 결코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5. 과학 통째 혐오증 :
마지막으로, '과학 그 자체'를 혐오하는 증상이 있다. 과학적 탐구정신에 대한 오해와 무지, 종교적 교리에 대한 집착으로 과학 그 자체를 부정해버린다.
과학은 정확한 게 아니고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하니까 과학을 믿지 말라는 식으로 과학에 대한 인신공격(?)을 시도한다. 이런 주장을 최근에 대형서점에 진열된 과학책을 가장한 종교서적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인류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진화를 부정하려니, 이제는 '과학 그 자체'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핸드폰, 자동차, 고속열차, 비행기, 텔레비전 등의 현대과학기술의 혜택은 다 누리면서도 "과학은 부정확하고 증명하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믿지 마라."는 어떤 종교인의 주장. 이런 책이 과학서적 코너에 진열되어있으니 씁쓸한 실소가 나온다. 과학이 부정확하고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데 자신은 무얼 믿고 비행기를 타고 냉장고를 사용한다는 말인가? 지구가 둥글고 내일 아침에도 태양이 뜨리란 건 어떻게 알며, 자기 자동차 열쇠를 돌리면 시동이 걸릴 거라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 것일까?
과학은 그나마 인류사회가 벌이는 활동들 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편이고, 끝없이 진리에 접근하며 정확성을 향상시키는 활동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종교 교리나 이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또한 순수한 진리 추구에 방해가 되어 그 교리에 관련된 객관적인 학문적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게 막는다. 종교적 이념 때문에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으라며 대중에게 강요하다가 결국 과학적 증거에 밀려나고 만 천동설 교리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실에 맞지 않는 종교 교리나 이데올로기는 인류 사회에서 세월이 지날수록 자꾸 도태되어왔다. 인류 대중은 지혜를 가진 종이므로 결국은 자꾸만 반복되는 현실에 눈을 뜰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의 어느 유사종교 교주는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 속에도 귀신이 있어서 우리를 배후조종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공포영화 소재로는 환영할 만한 발상이지만, 이런 주장을 객관적 증거도 없이 진지하게 하고, 또 그걸 믿는 사람들이 나오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과학기술과 오컬트의 결합. 무지와 욕망, 맹신이 결합되면 어떠한 주장도 가능해진다.
나는 현실 세계에서 점 치고 정해진 운명을 묻는 사람, 온갖 종교 믿으며 소원 비는 사람, 명당 찾고 잘 되려는 사람, 어떤 물건을 사서 쓰니까 그 때부터 좋은 애인도 만나고 자기 생활이 잘 풀린다는 사람, 징크스 따지는 운동선수들, 쥐띠니 소띠니 용띠니 뱀띠니 띠를 따지고 혈액형을 따지는 사람 등 숱한 사람들을 보고 겪어왔다. 이 세상에 비과학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은 숱하게 많다.(그 중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경험해보았다.) 그러나,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만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운 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고, 마음이 약한 존재라서 그렇다. 또한 지식도 부족하기 일쑤다. 그래서 뭔가에 의지하려 들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더라도 믿으려 든다.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이 심한 반면, 과학정신과 과학지식이 부족한 게 문제다. 무지와 오해와 맹신, 과욕과 공포심과 탐욕으로 전쟁무기를 함부로 휘두르거나 환경오염을 일으키기는 쉽다. 하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며 침착하고 신중한 과학적 탐구정신을 발휘하려면? 공부하고 연구하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건전한 윤리정신의 추구조차, 객관적인 과학적 탐구정신이 필요하다. 과학이 지나쳐서 문제가 아니라, 과학이 부족해서 곤란한 세상이다. 비싼 승용차를 타고 다니거나 핵폭탄을 만들어 쏘아댄다고 그게 선진화된 과학국가는 아닐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 속에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 '정신'이 살아있어야 참된 과학국가일 것이다.
# by | 2009/07/17 03:09 | 생활의 관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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